
지난 번에도 한번 책에 대해서 쭉 썼다가 스포일러가 어쩌구하는 방문객이 있었는데..스포일러 걱정되시는 분은 아예 첨부터 읽지 마시길...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주거지인 고향이든 마음의 고향이든 각자 하나씩의 고향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막연한, 어릴적의 푸근했건 기억이라거나 멘토와 같은 언제든지 나를 받아들여주고 따뜻하게 안아줄 것 같은 사람이 있다거나 하는 식의.
예전부터 전쟁에 관련된 소설이나 영화 같은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대고 죽이는 사람들이건 죽는 사람들이건 또 그 사이에 끼어서 굶주림과 공포로 괴로워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자체가 호러영화 보는 것보다도 더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큰 시련을 한번씩 겪고나면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하고 변화한다고 한다. 이 책도 미하엘이라는 소년이 전쟁통에 한나라는 고향같은 여인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펼쳐 놓은 것이다.
열다섯살 미하엘은 몸이 심하게 아프고 힘든 순간 뜽금없이 자신에게 손내밀어 보듬어주고 자신을 깨끗하게 닦아준, 그리고 그에게 놀랄만한 첫 경험을 하게해준 이름모를 부인에게 쇳조각이 자석에 끌리듯 중독이 된다. 언제나 알수 없는 분위기로 꼿꼿하게 자신을 숨기는 '한나'를 미하엘은 좀 더 알고 싶어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한나'역시 자신의 부끄러움을 어쩌지 못해 그저 강한척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책읽기에서 시작해서 잠자리로 까지 이어지는 것이었지만 단순한 잠자리 이상의, 미하엘이라는 소년이 '한나'의 부끄러운 점을 티나지 않게 조금씩 메꿔주는 그런 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의도가 있었건 아니었던 간에 그들의 사랑방식은 둘 다 어느정도 만족하였던 것 같으므로.
8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갑자기 떠나버린 '한나'의 공백을 어느정도 메꿔간다고 생각할 무렵, 전범으로 몰려 재판장에 선 '한나'를 예비 법조인의 자격으로 다시 만나게되는 청년 미하엘. 재판과정을 통해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재판장에서 밝혀질까 두려워서, 완벽한 이해를 하지 못할것이라는 자신의 판단에 그냥 항변을 포기하고 감옥살이를 택하는 '한나'를 보면서 미하엘은 그녀에 대해서 8년전 그들이 사랑했을 때보다도 더 많이 이해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녀를 찾아가 그녀를 볼 생각은 하지 못하는데.. 그녀가 자신의 고향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카세트테이프에 책을 읽어 녹음을 해서 그녀에게 보내기 시작한다. 무려 10여년 동안. 책을 읽어 녹음을 했다지만 그 테이프들은 미하엘이 또다른 방식으로 '한나'를 사랑한다는걸 고백하는게 아니었을까 싶으다. 감옥에서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은 미하엘. 중년이 된 그.. 할머니가 된 '한나'. 그 옛날 그녀의 촉감이나 체취는 전혀 남아있지 않고 몸매도 다 망가져버린 그녀이지만 미하엘은 어리둥절한채로 그저 그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렇지만 '한나'는 여전히 예전의 그들의 사랑을 간직한채였고, 변해버린 자신과 미하엘을 깨닫는 순간 그들의 사랑을 포기를 했다. 문맹이란게 알려지는게 부끄러웠던 것처럼 변해버린 그녀 자신이 부끄러웠던게 아닌가 싶다.
사람은 항상 변한다.
나도 그랬고, 아직도 내 주위에서는 조금씩 변해가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사랑인들 다르랴. 돌아서면 달라지는게 사람들 마음인데.
첫사랑은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그 첫사랑을 오랜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다면 그렇게 애틋한 감정이 다시 살아있을까?
좋았건 나빴건 간에 그건 내 마음속의, 아니 머리속의 잔상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소년이 청년에서 중년으로 성장하면서도 변하지 않고 마음속의 사랑을 지켜가는 것을 그려놓았다. 이 책 평에 나와있는 비밀, 에로티시즘, 죄의식 이런것들.. 사실 다 모르겠지만 암튼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이후 얼마간 마음이 왜 그리도 짠했는지 내 마음이 '한나와 미하엘'모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것 같아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추. 영화는 못봤지만 책속의 '한나'이미지와 영화의 케이트 윈슬렛은 너무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이미지라 영화도 보고싶어졌다. 이 책은 지극히 독일적인, 영국적인 정서가 아닌가 싶고 어쩌면 우리나라 양반님네 정서와도 똑떨어지는게 아닌가 싶으다.



덧글
얼굴마루 2009/07/08 12:26 # 답글
저도 얼마전에 책을 읽어서 그 여운이 남아있는데,남자가 자신의 사랑을 변함 없이 지켜나갔다고 보는 부분은 공감이 안되네요.
Jeeo 2009/07/09 05:35 # 삭제
제생각엔 남자가 카세트테이프에 책을 읽어 녹음을 하는 것 자체가 그여인에 대한 사랑인듯해서요. ^^ 어디까지나 제 느낌일 뿐이니까요.. 뭐..하하.
얼굴마루 2009/07/08 12:29 # 답글
저도 독후감 쓴거 있는데 제가 너무 비관적인 시각으로 책을 읽은 걸까요...